-
-
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지 않은 산이다.
-
몰래 숨겨두었다가 마음이 심란할 때 혼자 찾고 싶은 산이다.
-
둔주봉은 금강 곁에 선 평범한 흙산이며, 384m로 낮지만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.
-
화려한 바위가 솟은 것도 아니고 첩첩산중의 무게감 있는 풍경이 펼쳐지는 것도 아니지만
-
푹신한 솔숲 길과 멈춘 듯 고요히 흐르는 금강은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하는 미세한 편안함을 갖추고 있다.
-
그러나 이런 얘기는 지금처럼 산이 사람들에게서 잊혀진 듯 조용할 때 해당되는 말이다.
내비게이션에 ‘안남면사무소’를 찍어 닿았다.
-
중심가라고 해봐야 몇 발짝 안 되는 시골이지만 농협, 우체국, 마트, 식당 등 기본적인 건 다 있다.
-
안남초등학교 앞의 등산안내도를 훑어본 후 임도를 따라 고개 쪽으로 들었다.
-
갈림길이 몇 번 나와 헷갈리긴 하지만 만나는 길이다.
-
다만 오른쪽으로 가면 둘러가는 길이므로 왼쪽 길로 든다.
-
흰색 집이 있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길을 잡아 오르면 등산안내도와 이동식 화장실이 있는 산길 입구다.
-
화장실은 무척 지저분해 비위가 약하면 면사무소에서 미리 해결하고 가야 한다.
-
- ▲ 둔주봉에서는 한반도 지도 모양의 지형이 보인다. 금강이 만든 걸작품이다.
-
-
등산로는 임도처럼 널찍해 가파르지만 힘들지 않다.
-
고목은 없지만 빽빽한 소나무의 진한 솔향기가 기분 좋다.
-
오름길엔 간단한 운동기구와 벤치를 만들어 두었다.
-
둔주봉 산행의 백미인 ‘한반도 지도 전망대’는 산길로 접어든지 20분 만에 나온다. 산이 작긴 작다.
-
여기에선 한반도 지형이 보인다.
-
전망대 남쪽 강 건너 기슭의 강줄기가 크게 S자를 그리며 도는 바람에 한반도 모양으로 보이는 게다.
-
금강이 만든 예술 작품이니 보고 또 봐도 신기하고 또 신기하다.
-
둔주봉이 알려진 건 사진 동호인들 사이에 한반도 사진이 화제가 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.
-
이에 발맞춰 면사무소에서도 등산로를 내고 정자를 세운 것이다.
금강은 우아한 선을 그리며 반도 모양의 숲을 돌아 흐른다.
-
멀리 왼편에는 금빛으로 물든 들녘이 풍경의 완성도를 더한다.
-
쉽게 잊혀지지 않을, 사진을 찍지 않고선 배기지 못할 풍경이다.
-
다시 20분을 더 가자 얕은 무덤이 있는 정상이다.
-
서쪽으로 어느 정도 트여 있어 산 풍경이 보인다.
-
그러나 한반도 경치에 비하면 평범하다.
-
- ▲ 둔주봉 정상. 탁 트인 건 아니지만 서쪽 전망이 뚫려 있다.
-
- ▲ 둔주봉을 내려서 강가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숲. 등산로 조성으로 지금은 볼 수 없는 모습이다.
-
-
이후 푹신푹신한 솔숲 길을 따라간다.
-
소나무가 빽빽하여 별 풍경은 없으나 발을 내디딜 때의 편안한 촉감과 코를 시원하게 하는 숲 향기가 도시인의 지친 마음을 편히 풀어주는 듯하다.
-
내리막길은 강을 만나며 끝난다.
강은 산 위에서 본 것과 다르다.
-
다른 세상에 온 듯한 분위기다.
-
그림을 보는 것처럼 느린 강과 건너편에 벽처럼 솟은 산줄기, 그 산의 결에는 단풍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화사하다.
-
사람의 흔적이 없는 숲은 어디로 걸어야 할지 망설이게 하지만 오후의 마지막 햇살이 비추자 꽃이 피듯 숲이 환하게 피어난다.
-
실로 적막강산이다.
-
새가 울자 고요하던 강가에 파문이 일 듯 진동한다.
-
빨리 스쳐 보내기 싫은 숲이기에 느리게 걸어본다.
-
간간이 높은 풀이 있지만 걷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.
-
- ▲ 들머리에 등산안내판과 이동식 화장실이 있다.
-
-
원시성을 간직한 숲은 얼마 못 가 사라지고 트럭과 한 무리의 사람들이다.
-
면사무소의 용역으로 길을 트는 주민들이다.
-
마을사람들 말에 따르면 원래 실처럼 길쭉하고 뾰족하다 해서 ‘둔실봉’이라 불렸으나 주씨들이 많이 산다고 해서 둔주봉으로 바뀌었다고 한다.
그러나 등산로라고 하기에는 길을 너무 넓게 터서 차가 다닐 지경이라 아쉽다.
-
금방 걸어왔던 길도 다 터서 길을 내겠다고 하니 좀 전에 마주쳤던 신비로운 숲은 기억 속에만 남게 되었다.
-
그래도 나무와 풀만 쳐내 만든 길이어서 자연미가 사라진 건 아니다.
-
강 길은 조용하고 편안해서 얘기를 나누기 좋고, 지나간 일을 생각하기 좋고, 사랑을 고백하기 좋다.
-
한 시간 정도 강을 따라 걷자 아스팔트다.
-
편안한 호흡으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산, 둔주봉이다.
산행 길잡이
안남초교~산길입구~전망대~정상~강가~연주2리~안남초교
안남초교에서 산길 입구까지 갈림길이 몇 번 나온다.
-
이때 왼쪽 길, 직진, 왼쪽 길로 가면 등산안내판이 있는 입구다.
-
등산로는 남쪽 능선으로 이어진 외길이므로 길 찾기는 쉽다.
-
강가에 내려서면 왼쪽 강둑 숲길을 따른다.
-
양수장에서 안남초교까지는 아스팔트지만 버스편이 없으므로 30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.
-
가민 오레곤300 GPS로 확인한 산행의 실주행거리는 9.4km로 4시간 정도 걸린다.
-
>> 교통
원점회귀가 가능하므로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.
-
경부고속도로 옥천IC로 나와 보은 방향으로 37번 국도를 따르다 인포삼거리에서 안남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575번 지방도를 따르면 안남초교에 닿는다.
-
면사무소 옆에 주차장이 있다.
-
대중교통 이용시에는 옥천이 기점이다.
-
옥천에서는 안남행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꼴로 운행(06:20~19:40)한다.
-
30분 소요에 요금은 2,000원이다.
-
안남으로 들어온 버스는 다시 옥천으로 돌아 나간다.
-
1일 15회(07:10~20:10) 운행한다.
>> 숙식
안남면에는 최소한의 식당과 숙소가 있으므로 옥천으로 나가는 것이 더 낫다.
-
안남초교 앞의 삼흥낚시점(732-7028)은 슈퍼와 민박을 겸하고 있다.
-
배바우손두부(732-2137), 보영반점(732-9993), 만복정(732-7970), 안남식당(732-7561), 금오식당(732-7046) 등이 있고 농협하나로마트가 있다.
-
여관이나 모텔은 없다.
월간산 / 글 신준범 기자
사진 이구희 기자